흐르는 시간의 블로그...

정말 가공할 작품이지요... ^^

어디선가 가져와서 보관해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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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00.09.09


"대구 부산엔 추석이 없다"…부도직격탄 피해지역 르포

《추석 분위기가 썰렁하다. 전국 어디를 둘러봐도 마찬가지다. 천고마비, 청명해야 할 가을하늘이 잿빛처럼 느껴진다. 소원을 빌 둥근 보름달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까. 특히 지난달 말 지역경제를 지탱해온 우방이 부도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대구지역은 암울한 분위기에 휩싸여있다. 부도사태와 관련된 협력업체는 1300여개, 관련 종사자만 1만3000여명. 한마디로 우방사태의 피해를 당하지 않은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다.》‘한국 제2의 도시’ 부산도 예외가 아니다. 부산 경제의 지표인 어음부도율은 0.2%로 다른 지역에 비해 낮다. 그러나 “더 이상 부도날 기업이 없기 때문에 부도율이 낮다”는 아이러니는 부산을 포함한 우리 경제 전반의 ‘우울함’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구의 재래시장인 서문시장 상인들은 8일 이구동성으로 “아이들 옷 이외에 팔리는 것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한 상인은 “작년의 경우 1만원어치를 팔았다면 올해는 2000원 매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김모씨(45)는 “아직 우방의 여파가 시장에까지 직접 나타나진 않았지만 추석이후 연쇄부도와 함께 경제위기가 몰려올 것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추석연휴를 앞둔 8일 오후 부산 남포동 국제시장. 260여개의 의류점포를 비롯해 1400여개의 점포가 밀집한 부산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인 이곳도 ‘추석대목’은 실종됐다.


액세서리 가게를 기웃거리는 손님 외에는 썰렁한 모습. 이른 저녁 셔터를 내려버리는 가게도 적지 않다. 옷가게를 하는 김모씨(여). 몇 년 전만 해도 이때쯤이면 다른 사람의 어깨와 부딪히는 게 다반사였다며 “추석 경기예, 요즘 부산에 그런 것이 어디 있어예”라며 강한 사투리로 반문했다.


대표적 번화가인 광복동. 사람이 북적거리기는커녕 한산한 느낌이고 부산역 앞엔 빈 택시만 붐비고 있다. 택시기사들은 손님이 없어 아예 차밖에 나와 삼삼오오 모여 신세타령이다. 한 기사는 “경기가 좋을 때는 손님도 가려 태우고 합승도 했다. 요즘은 사납금을 벌기도 어렵다”고 푸념했다.


‘한국 신발산업의 메카’로 불렸던 부산 사상공단에서 과거의 영화를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문을 닫은 공장이 많고 어쩌다 만난 근로자들의 표정에도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있다.


신발업체인 ㈜신세영화성 김동근(金東根)사장은 “최근에만도 비교적 잘 나가던 프로상사와 ㈜거금이 부도를 내는 등 잇따라 신발업체가 쓰러지고 있다”고 전했다.


<부산·대구특별취재팀>








한겨레신문 2000.11.20

'조폭신문'의 논리

홍세화

정연주 (한겨레) 논설주간에게서 '조폭'이라는 지적을 받고도 '조중동(조선, 중앙, 동아)'은 반론 하나 제대로 제기하지 않고 있다. 그 말에 동의해서일까, 아니면, "떠들 테면 떠들어라! 우리는 '할 말을 한다'"는 식의 대응일까. 이것이든 저것이든 조폭적이라는 점에서는 매한가지다.조폭은 오직 힘을 경배한다. 조폭은 합리성이 아니라 오직 힘의 논리를 추구하며 이를 위해 무장돼 있고 조직돼 있다. 힘의 논리 아래 오야붕과 꼬붕들이 충성과 의리로 뭉친 집단이 조폭 집단인데, 그래서 "사장님, 힘내세요!"와 같은 충성심을 보이기만 하면 아무리 왜곡을 일삼아도-외신을 자기 입맛에 맞게 뒤집어 말했던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처럼-쫓겨나기는커녕 사주의 총애를 받으며 오늘도 칼럼을 쓸 수 있다.


이 조폭 신문들의 힘의 논리를 뒷받침해 주는 것은 발행부수뿐이다. 그들의 첫째 목적인 광고 장사를 위해서도, 둘째 목적인 언론 권력을 위해서도 발행부수는 그들의 절대적 지표이며 법칙이며 신앙이다.


그들이 발행부수를 늘리기 위해 피터지게 싸우는 까닭은 이 때문이며, "대구 부산에 추석 없다" 따위의 기사를 부끄러움없이 싣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늘도 그들은 조폭답게 "우리는 매일 200만이다!"라고 힘자랑을 하고 있다. 특히 '일등신문'이라고 자랑하는 (조선일보)는 조폭성에서 단연 일등이다.


프랑스 신문 (르몽드)가 세계적으로 공인받는 신문이라는 점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텐데 발행부수는 6천만 인구에 50여만부에 지나지 않는다. 독일과 영국의 정평 있는 신문들도 모두 30만부 정도이고 200만부를 넘는 신문이 몇 개 있긴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황색지거나 광고상업지들이다. 4500만 인구에 발행부수 200만인 신문은 스스로 광고상업지임을 밝히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한국인들이 유럽인들보다 민도가 그만큼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무지와 오류가 이성의 눈뜨기를 막아서 나타난 결과일까?

이제 뒤늦게나마 언론 개혁을 요구하는 시민운동에 대해 (조선일보)는 언론 자유를 외치고 있다. 언론개혁 시민운동이 (조선일보)의 언론 자유를 가로막고 있다는 주장이다. 과거 독재권력의 '보도지침'에 대해서는 가장 솔선수범했던 신문이 시민의 개혁 요구에 대해서는 언론 자유를 외치고 있으니 실로 흥미로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잘 알다시피 언론 출판의 자유는 사상의 자유와 함께 오래 전부터 주장돼 왔다. 17, 18세기 이래 인문주의자들, 계몽사상가들이 자유 사상을 외쳤던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았다. 바로 공익을 위해서는 사상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가 필수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자유 사상을 위해 싸웠던 궁극적인 이유는 공익의 실현에 있었다.


한국에서는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에 신용비어천가를 불러댔던 (조선일보) 등의 활약으로 오랫동안 자유가 억압돼왔는데, 그 자유를 되찾기 위한 투쟁 과정에서 우선 자유를 주장하다 보니 그 전제였던 공익 개념이 크게 실종되었다. 이 허점을 이용하여 비집고 들어온 것이 바로 (조선일보)의 언론 자유 주장이다.


다시 말해, 일반 국민이 신문은 언론 자유의 산물이니만큼 공익을 위하리라는 허상의 인식을 갖고 있음을 악용하여 그들이 갖고 있는 유일한 무기인 발행부수가 마치 공익성을 대변한다는 듯이 속임수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도대체 소유-경영-편집이 '오야붕-꼬붕'들의 관계 속에서 일체화된 조폭 신문들이 공익을 위한 신문이겠는가, 사주와 사주에게 충성하는 '경비견'들의 사익을 위한 신문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