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나라당] 지난 5년 그들의 화려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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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나라당] 지난 5년 그들의 화려한 기록...
반대를 위한 반대, 딴지걸기 전문당 딴나라당..
현찰 박스 전문 배달당 차떼기당..
이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에 "性나라당"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은 듯 하군요...
자칭 잃어버린 10년 동안 한 게 뭐가 있나 묻고 싶을 정도네요...
손아귀에 들어올 것만 같던 정권을 두 차례나 놓쳤던 회한을 이런 식으로 달래야만 했을까요?
대충 확인되는 것만 5년 동안 21건. 세계 정당사에 길이길이 남을 화려한 족적을 남기고 있네요... 그것도 현재 진행형으로...
=&=&=&=&=&=&=&=&=&=&=&=&=&=&=&=&=&=&=&=&=&&
<한나라당 성추행 주요 일지>
1. 2003년 10월 말, 정두언 의원
- 서울 부시장 시절 종합일간지 여기자 성추행사건
2. 2003년 12월 말, 이경재 의원
- 동료 국회의원을 향해 "자기 좀 주물러 달라는 것이지"
3. 16대 총선 직전 정인봉 인권위원장
- 수백만원대 성접대 사건
4. 2005년 2월 중순, 정형근 의원
- 호텔에서 40대 여성과 있었던 묵주사건
5. 2005년 9월 말, 주성영 의원
- 술집 여주인에대한 성적 비하 폭언사건
6. 2005년 12월 19일, 임인배 의원
- 국회의장실 여성 비서들에게 "뭐하는 년들이야. 싸가지 없는 년들"
7. 2006년 1월 20-21 충북도당
- 여성 옷벗기기 강요 사건
8. 2006년 2월 말 한나라당 최연희 사무총장
- 여기자 성추행 사건
9. 2006년 3월 박계동 의원
- 술집 종업원 성추행 사건
10. 2006년 5월 안상수 시장
- 최연희 의원이 "친해지려 그랬을 것"
11. 2006년 7월 이효선 광명 시장
- 여성 통장들 모아놓고 "활발한 성생활을 위하여"
12. 2006년 8월 정진섭 의원
- 낮술에 여성 성희롱 의혹사건
13. 2006년 9월 말 한나라당 경기도의회 의원
- 필리핀 외유와 룸살롱 성 매수의혹
14. 2006년 11월 17일 한나라당 시의회 남성 의원들
- "양성평등사업은 남성에 대한 도전"
15. 2006년 12월 1일 이재웅 의원
- 여성재소자 비하발언, 안마시술소, 노래방 도우미 발언
"여성재소자들이 (가슴을 내밀고) 한번 줄까 한번 줄까"하더라
16. 2006년 12월 2일 김충환 의원
- "불법 마사지등은 성행위가 아닌 짙은 안마"
17. 2006년 12월 초 김용서 수원시장 일행
- 카타르 도하-두바이에서 있었던성추문
* 이와 관련된 두바이의 나이트 클럽 소개 (http://blog.daum.net/dullahbank/10503766)
18. 2006년 12월 15일 정석래 당원협의회장
- 대학교 제자 강간 미수사건
19. 2006년 1월 4일 황우여 사무총장
- 노골적인 성표현으로 문제된 일간지 소설을 보호했다며 문란한 성문화를 부추긴 사건 "지난해 제가 강안남자를 위해 많이 싸웠습니다."
20. 2006년 1월 4일 강재섭대표
- "조철봉이 왜 섹/스를 안해", "하루에 세 번 하더니 한번은 해줘야지", "한번은 해줘야지 너무 안하면 철봉이 아니라 낙지야 낙지"
21. 2007년 8월 28일 이명박 대통령 후보
- 주요 일간지 편집국장 10여명과 함께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현지에서 오래 근무한 선배는 마사지걸들이 있는 곳을 갈 경우 가장 얼굴이 덜 예쁜 여자를 고르더라. 예쁜 여자는 이미 많은 손님들을 받았겠지만 예쁘지 않은 여자들은 자신을 선택해준 게 고마워 성심성의껏 서비스를 하게 된다”는발언으로 논란
그리고 정권을 잡은지 한 달을 갓 넘긴 2008년 4월 2일...
1. 한나라당 국책자문위회 직원 박 모 씨 여성 성폭행 혐의(강간 등)로 구속
2. 정몽준 후보 여기자 성희롱 논란
지위고하, 장소와 상관없이 그들의역사는 계속된다.....쭈우우우욱!!!!
이럼 안되는거 아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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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식 새우깡 사과문
**** 원 출처는 모르고 2차 출처 : http://dvdprime.dreamwiz.com/bbs/view.asp?major=ME&minor=E1&master_id=43&bbsfword_id=&master_sel=&fword_sel=&SortMethod=&SearchCondition=&SearchConditionTxt=&bbslist_id=1281151&page=1***
**사과문**
새우깡에 쥐머리가 나온 것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다.그렇지만 쥐머리 새우깡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오해가 있었고 잘못 알려진 점이 있다. 새우를 잡다보면 그물에 쥐가 걸려들어가는 경우도 있고 새우가 쥐를 삼키는 경우도 있다. 더구나 그 새우깡은 노무현 정권때 제조된 것이다.
앞으로 쥐머리를 이용해 우리에게 네거티브를 한다면 좌시하지 않겠읍니다.
*********************************************************
최시중: 새우깡에 쥐머리를 넣은 기억이 없다. 귀신이 집어넣은 것이다.
정연희: 쥐머리 먹어서 죽었다는 사람 못봤다.
나경원: 새우깡에서 쥐머리가 나왔다고 나라가 망하나?
이경숙:쥐머리가 아니다. 어린쥐머리다.
김성이: 쥐의 신앙심이 부족했을 뿐 새우깡은 문제없다.
유인촌: 저 쥐는 참여정부때 태어난 것이다. 노무현 인사는물러나라.
이상희: 새우만 먹다 쥐머리를 먹으면 원기가 회복될거 같다.
이명박: 쥐머리 새우깡, 이것이 실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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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 그 못다한 이야기/5월에서 10월까지(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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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좋아하지 않는 서프의 글이긴 하지만... 대부분 인용문으로 가치가 있다.
인용 자료로황석영 씨와 강준만 교수의 글이 있다.
▲ 허화평 전 보안사령관 비서실장이 15일 "(80년 광주의) 계엄군은 착검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복 진 <전남일보> 사진부 기자가 80년 5월 19일 촬영한 사진 에는 M16 자동소총에 대검을 꽂은 채 시민들을 쫓고 있는 공수부대원의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다.(붉은 색 원) 5.18 기념재단이 펴낸 <오월, 우리는 보았다 - 계속되는 오일팔 (1979.2.25-2004.5.18)>에서 발췌. ⓒ2005 신복진 ▲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계엄군이 착검하지 않았다 는 허화평씨 주장과 달리 신복진 <전남일보> 사진부 기자 가 80년 5월 19일 당시 촬영한 사진에는 M16 자동소총에 대검을 꽂은 채 시민들을 구타하는 공수부대원의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다. 5.18기념재단이 펴낸 <오월, 우리는 보 았다-계속되는 5.18>에서 발췌.ⓒ2005 신복진
영
손현숙 (1969-그룹 천지인 보컬)
오월에서 푸른 시월까지
(작사:김현성 작곡:김현성)
따스한 햇살이 나를 부르듯 오월이 왔네
친구는 이야기하네 내 어깨에 손을 얹고
자유를 모르는 자 참된 사랑을 모른다네
그대가 뛰어가는 젊은 거리에 내가 있고
그대가 쓰러지면 내가 다시 뛰어가리
눈부시게 오월에서 푸른 시월의 하늘까지
서로 사랑하며 눈물 닦아주며
[화려한 휴가의 기록]
5월 17일
밤 11시 40분, 문공장관 이규현은 5월 17일 24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계엄 확대가 발표되고 두 시간이 지난 후, 전남대와 조선대 캠퍼스에 특전사가 투입되었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인물과 사상, 2003)
.
좌측 머리부분이 함몰된 광주항쟁 사망자
5월 18일
오전 10시, 휴교령이 내린 상태에서 전남대 정문 앞에 모여든 학생 100여명과 무장 공수대원이 대치하였다. 200-300명 정도로 수가 불어나자 학생들은 "계엄해제" "계엄군 물러가라" "휴교령 철회하라" 라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곧 대치 중이던 공수부대 책임자가 "돌격 앞으로" 라는 명령을 내렸고, 공수대원들은 학생들에게 파고들면서 곤봉을 휘둘렀다. 곤봉은 쇠심이 박힌 살상용 곤봉으로, 이를 맞은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인물과 사상, 2003)
좌측 가슴에 총상과 자상이 난 채 사망한 광주항쟁 사망자
"공수부대 병사들은 마음껏 모든 가능한 폭력을 행사하였다. 첫날부터 대검을 사용하였고, 지나친 폭력에 항의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해대며 무지막지하게 구타하고, 여성들에게 폭행하고 옷을 찢고 심지어 젖가슴을 대검으로 난자하였다."
-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풀빛, 1999)
뒤쪽에서 본 위 사진 사망자의 총상 자국
"공수 놈들이 여고생을 붙잡고 대검으로 교복 상의를 찢으면서 희롱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60살이 넘어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아이고! 내 새끼를 왜들 이러요?" 하면서 만류하자 공수놈들은 "이 씨팔 년은 뭐냐, 너도 죽고 싶어?" 하면서 군화발로 할머니의 배와 다리를 걷어차 할머니가 쓰러지자 다리와 얼굴을 군화발로 뭉게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여학생의 교복 상의를 대검으로 찢고 여학생의 유방을 칼로 그어버렸다. 여학생의 가슴에서는 선혈이 가슴아래로 주르르 흘러내렸다."
-박남선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샘물, 1988)
아...하늘이여....
"어느 할아버지는 "저럴 수가 있느냐, 나는 일제 때에도 무서운 순사들도 많이 보고, 6.25 때 공산당도 겪었지만 저렇게 잔인하게 죽이는 놈들은 처음 보았다. 학생들이 무슨 죄가 있길래 저러는가. 죄가 있다고 해도 저럴 수는 없다. 저놈들은 국군이 아니라 사람의 탈을 쓴 악귀들이야." 하면서 통곡했다. 어느 중년의 사내는 "나는 월남전에는 참전해서 베트콩도 죽여봤지만 저렇게 잔인하지는 않았다. 저런 식으로 죽일바엔 그냥 총으로 쏴 죽이지. 저 놈들은 죽여버려야 해" 하면서 오열을 터뜨렸다. 온 거리는 피의 강, 울음의 바다가 되었다."
무참하게 구타당한 채 사망당한 광주 영령
5월 19일
"5월 19일에 저질러진 공수부대의 만행은 어찌나 잔인했던지 진압하러 나온 경찰조차 시민들에게 울먹이면서 "제발 집으로 돌아가라, 공수부대에게 걸리면 다 죽는다"고 애원할 정도였다."
사살되거나 타살후 리어카에 실려 어디론가 이동을 기다리는 시신
"주위의 노인들이 공수대원의 폭력을 만류하자 그들은 노인들의 머리를 곤봉으로 후려쳤다. 노인들도 머리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이런 모습을 도망치며 바라본 시위 군중들은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일시에 돌아섰다. 그리고는 "좋다, 다 죽여라!" 하면서 공수부대에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 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 황석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풀빛, 1985)
"로타리 부근 전투에서 머리가 으깨지고 팔이 부러져 온통 피범벅이 된 부상자를 급히 병원으로 이송중이던 택시기사에게 공수대원이 부상자를 내려놓으라고 명령했다. 기사는 안타깝게 "당신이 보다시피 지금 곧 죽어가는 사람을 병원으로 운반해야 되지 않겠느냐" 라고 호소하자 그 공수대원은 차의 유리창을 부수고 운전기사를 끌어내려 대검으로 무참하게 배를 찔러 살해했다. 이런 식으로 최소한 3명의 운전기사가 살해당했는데, 이는 다음날인 20일, 또 하나의 기폭제였던 차량시위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다."
- 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 황석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풀빛, 1985)
어떻게 눈을 감았을꼬..
5월 20일
대검만으로는 모자랐던 걸까. 20일 오후부터는 심지어 화염방사기까지 사용하였다. 2시 30분경 공수부대는 화염방사기를 쏘아 여러 명의 시민들이 그 자리에서 타 죽었다.
-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풀빛, 1999),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택> (인물과 사상, 2003)
"시민들은 혹시나 자신들의 운명에 관한 새로운 소식이 TV를 통해 방영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모두 열심히 시청하였지만 TV에서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연속극이나 오락프로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방영되고 있었다. 그들은 텔레비젼을 보며 이글이글 타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한 쪽에서는 죄 없이 같은 동포가 절규하며 죽어가고 있는데, 저 텔레비젼의 다리를 흔들어 대는 춤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배신감이었다."
- 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 황석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풀빛, 1985)
아.....아.....그저 눈물만....
MBC 이외에도 KBS와 세무서도 불에 탔다. 신군부는 이 방화들을 '폭도론'의 증거로 TV 등을 통해 계속 보여주었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인물과 사상, 2003)
얼마나 얼마나....
"전남대에서 신역까지 도보로 이동하면서 아스팔트와 건물을 향해 사격을 실시한다. 트럭 위에서는 M60이 엄호사격을 하면서 한 발 한 발 신역을 향해 다가간다. 사병들을 향해 고함치기 시작했다. 후퇴는 없다. 후퇴하면 모두 쏴죽인다."
- 광주매일 정사 5.18 특별 취재반 <10일간의 항쟁> (사회평론, 1995)
피멍이 들어 사망한 광주영령을 방치한 공수부대
5월 21일
오전 10시경 금남로에는 10만이 넘는 시민들이 모여 있었다. 시민들은 일단 정오까지 공수부대를 시외곽으로 철수시키겠다는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약속한 정오가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오후 1시 정각, 건물 외부에 설치된 확성기를 통해 애국가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그건 공수부대의 집단 발포를 알리는 신호였다. 광주시민들을 몰살시키려는 것이었을까. 시민들은 공수부대의 집단 발포를 정면으로 맞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인물과 사상, 2003) 광주매일 정사 5.18 특별 취재반 <10일간의 항쟁> (사회평론, 1995)
거의 미이라가 된 상태로 방치된 시신
"공수놈들은 같은 동족을 살상하고도 쓰러진 사람들을 옮기지 못하도록 연발로 위협사격을 해대었다. 아직도 공수부대놈들의 사격선 부근에서 부상한 채로 살려달라고 외치는 시민들의 애원소리는 처절했고, 이는 그것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피를 끓게했다. 공수놈들은 아직 죽지 않고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시민들을 구하려고 뛰어나가는 시민들에게조차 사격을 가해 사살해버렸다. 부근 건물의 벽에 바짝 붙어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시민들은 모두 울고 있었다."
-박남선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샘물, 1988)
얼마나 아팠을까 아
"순식간에 금남로는 피와 통곡의 바다가 되었다. 공수부대는 도청과 주변의 건물에 숨어 보이는 사람들마다 져격하였다. 1시 30분경에는 한 청년이 장갑차 위에서 윗통을 벗고 태극기를 높이 휘날리며 도청을 향해 '광주만세!' 를 외치며 달려들었다. 모든 시민들이 긴장되어 그를 응시하는 가운데 한 발의 총소리와 함께 피가 튀며 청년의 목이 꺽어졌다. 이 광경을 본 모든 시민들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에 온몸을 떨었다. 이제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전쟁' 이었다. 시민들은 곧 총을 얻기 위해 시내, 외의 무기고로 향했다."
-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풀빛, 1999)
사살되거나 타살되거나 대검에 찔려 방치된 시신들
21일 저녁, 드디어 시민군은 계엄군을 도청에서 몰아내고 점거하는데 성공한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택> (인물과 사상, 2003)
5월 22일
22일 비공식적인 정전이 성사되고 종교 지도자들을 포함한 시민 수습위원회와 신군부 사이에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날 계엄당국은 김대중을 광주폭동의 배후라고 발표했으며, 일부 특전사 지휘관들은 무력을 동원해 광주 '폭도들'을 '소탕'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윌리엄 글라이스틴, 황정일 역. <알려지지 않은 역사> (중앙 M&B, 1999),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인물과 사상, 2003)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는 아..........
전두환은 정석환에게 "최장군의 사기가 극도로 저하되어 있을 터이니 용기를 잃지말고 분발하라고 전해달라"며 전두환 자신의 명의로 금일봉 1백만원을 최웅에게 전해달라고 지시했다.
- 정석환, <비화/ 5.18당시 정보부 전남지부장 정석환 비망록> (신동아, 1996 1월)
5월 24일
공수부대는 지원동 주남마을을 출발하여 학동과 진월동을 거쳐 시민들의 눈에 띄지 않는 야산으로 철수하던 중 진월동에 이르러 인근지역에 장난삼아 총질을 가했다. 저수지에서 멱을 감고 있던 아이들에게 집중 사격을 가하자 아이들은 둑 너머로 피신했지만, 전남중학교 1학년이었던 박광범이 머리에 총을 맞고 즉사했다. 또한 진월동 동산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에게도 무차별 집중사격을 가했다. 모두 피신했지만 신발이 벗겨져 뒤돌아섰던 효덕국민학교 4학년 전재수는 총에 맞고 즉사했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인물과 사상, 2003)
님이여...
전남대학교 교수들은 <대한민국 모든 지성인들에게 고함>을 발표했다. "모든 사람들은 6.25때에도 이런 참혹한 살육전은 없었다고 울부짖으며 '모두 죽자' '죽여달라' 를 외치며 짐승 같은 계엄군과 맨몸으로 싸웠습니다..... (중략) 고립된 우리 광주 시민들에게는 무엇보다도 한시가 절박합니다. 민주시민이여! 민주화를 위해, 우리의 삶을 위해 일어섭시다."
- 김정남 <동포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생활성서, 2002년 12월)
조국은 그대들에게 총칼로 잔학했는데..그래도 태극기를 덮고...
5월 25일
아침 8시, 황금동 부근에서 술집을 경영하는 21세의 장계범이라는 사람이 도청 농림국장실에 쓰러지듯이 허겁지겁 들어닥치면서 어깨를 움켜쥐고는 "독침을 맞았다!"고 소리쳤다.... (중략) 독침 사건이 발생하자 도청 안의 분위기가 갑작스레 살벌해졌다. 여기저기서 간첩이 침투했다는 소문이 돌고 모두들 수군거리며 도청 안에는 불안해서 못 있겠다며 상당수가 빠져나갔다...(중략) 이 사건은 사전에 계획된 것으로서 침투정보요원들의 도청지도부 교란작전이었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인물과 사상, 2003)
길거리에 방치된광주의 영령들
5월 26일
전남 도청에서 최초이자 마지막 내외신 기자회견이 열렸다. 미국의 일간지 <볼티모어 선>지의 기자 블레들리 마틴은 이 기자회견에서 만난 광주항쟁 지도부의 청년학생투쟁위원회 대변인이었던 윤상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미 그가 죽을 것임을 예감했다. 그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표정에는 부드러움과 친절함이 배어 있었지만,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읽을 수 있었다. 지적인 눈매와 강한 광대뼈가 인상적인 그는 최후의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 임창용 <'폭동'아닌 '민주항쟁' 자리매김 큰 몫 윤상원 5.18 시민군 대변인> (서울신문 1998 9월 10일)
다 피지도 못하고...여인이여...
5월 27일 0시를 기점으로 광주의 시외 통화가 끊기자 도청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계엄군이 진입할 것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고등학생들은 먼저 총을 버리고 투항해라. 우리야 사살되거나 다행히 살아남아도 잡혀 죽겠지만 여기 있는 고등학생들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산 사람들은 역사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의 빛나는 미래를 위하여, 항쟁의 마지막을 자폭으로 끝내서는 안된다. 자, 고등학생들은 먼저 나가라."
- 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 황석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풀빛, 1985)
절통하고 절통해서 어찌 눈을 감겠소...
5월 27일
새벽 4시쯤 도청 앞은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었으며, 금남로를 중심으로 시가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계엄군의 장갑자 위에 장착된 서치라이트가 도청을 비추는 가운데 계엄군은 항복을 권유하는 최후 통첩을 방송했다. 그러나 도청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곧 총성이 울림과 함께 계엄군의 서치라이트가 박살났다. 다시 캄캄한 어둠이 내리깔렸고 계엄군의 일제사격이 개시되었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인물과 사상, 2003)
달아나던 시민군을 살해했던 계엄군은 8명의 투항자들을 전부 사살하였다. 한 계엄군 병사는 한쪽 발을 시민군 포로의 등에 올려놓고 사격하면서 "어때, 영화구경하는 것 같지?"라는 농담까지 던졌다.
- 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 황석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풀빛, 1985)
아.......그저........
"시민군들이 모두 정면으로 응사하는 동안 뒷담을 넘어 들어온 3공수 특공대는 도청 건물로 잠입하여 보이는 대로 총을 난사하고 여기저기 수류탄을 까넣었다. 그리고는 확인사살까지 했다. 많은 시민군들은 특공대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지만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풀빛, 1999)
그 날 이후
광주학살의 참상을 목격한 후 서울로 올라왔던 서강대생 김의기는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5월 30일 오후 5시 30분 서울 종로 5가 기독교회관에서 <동포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글을 뿌리면서 투신 자살했다.
후일,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어 신고가 접수되지 않은 사망자 수까지 합하면 전체 사망자 수는 2천명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지만 확인할 길은 없었다. 공수부대원들이 처음부터 사상자수를 은폐하기 위해 사상자가 발생하는대로 트럭에 싣고 아무도 모를 곳에 파묻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인물과 사상, 2003)
<조선일보>는 5월 25일자 사설에서 항쟁세력들을 '분별력을 상실한 군중'으로 몰아붙이고는, "......57년 전 일본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의 역사가 반교사적으로 우리에게 쓰라린 교훈을 주고 있다..." 며 마치 광주시민들을 무자비한 일본인 폭도들에 비유하기도 했다.
- 정운현 <'광주의 굴레' 못 벗은 한국언론> (대한매일 2001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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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구씨 허씨의 증권시장 수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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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말을 꺼낸 김에 이번에는 구씨,허시일가의 증권시장 수탈사를 올려봅니다.
자료는 2004년 신동아에 실린 내용입니다.
1. LG카드 사태
02년 상장첫날 108,000원까지 치솟았던 LG카드는 당일부터바닥을 모르고 추락해 현재(1월20일) 510원이다. 부실 털기를 위한 감자를 무려 44:1로 확정된 데 따른 것이다.
개인 투자자들이 외국인 물량을 상당량 받아준 것은 감자비율이 2.5:1이라는 그럴듯한 미확인 정보에 따라 3,000원대면 괜찮은 가격이라 믿고 매수에 나선 때문이다. 누군가 막대한 물량을 처분하고자 속인 것이 분명하다. 결과 외국인들로부터 800억원이 넘는 차금 손실을 개인들이 떠 안게된 것이다.
LG 구?허가 대주주들이 LG카드 주식을 취득한 가격은 1주당 평균 5천원∼1만원이라고 한다. LG카드가 02년 4월22일 증시에 상장될 때 공모가는 58,000원이었다.
LG카드 허가네 대주주들은 상장 후 6개월이 지나 보호 예수 기간이 종료된 그 해 11월부터 주식을 대량으로 내다 팔기 시작했다. 매도가격은 3만∼4만원일 때인데 당시 증시에서는 일부 증권사가 적정가를 8만원으로 봤기 때문에 그토록 저가에 매도하는 이유를 허가 대주주들의 금융부문에서 손을 떼는 계열분리쯤으로 알고 있었다.
03년 들어서 구가 대주주들도 매도 대열에 합류했다. 매도 이유를 "창업고문 집안의 계열분리를 위한 지분정리"라는 말로 투자자들을 속였다. 구?허가 대주주뿐 아니라 핵심 임원들도 LG카드를 고가에 매도했다. 구본무 회장의 최 측근인 강유식 부회장과 이헌출 LG카드 사장은 각각 21,400주와 5만주를 작년 4월에 21,400원∼20,600원에, LG증권 서경석 사장 역시 26,193주를 02년 11월부터 작년 7월 사이에 15,700원∼44,900원에 장내에서 처분했다.
구가네 대주주들은 LG카드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기 직전인 지난 11월18일∼19일 사이에 남은 물량 전량을 장내에서 매도했다. 이 때 LG카드 가격은 11,000원 내외였다. 02년말 LG카드의 개인 대주주 지분은 32%였는데 현재 거의 전량을 장내 매도했다고 보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부실화되기 시작한 과정을 누구보다도 먼저 감지했기 때문이다.
이는 사내정보를 이용한 불공정행위가 분명한데 어찌된 셈인지 금감윈은 '꿀먹은 벙어리'다.
이러한 착취 대상은 투자자뿐 아니라 직원들도 그 대상이 된다. 사주조합에서 직원의 매수가격이 5만원 내외라고 하며 그중 90%가 빚으로 충당했다고 하니 그 피해정도가 얼마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직원들은 매도할래야 할 수 없는데 대주주들은 마음껏 장내에서 매도할 수 있는 현 제도에도 문제가 있다.
더욱 가증스런 일은 지난 연말에 실시한 유상증자인데 구?허가네 대주주들은 모두 다 팔아치우고 일반 투자자에게 1주당 5,400원에 유상증자에 임하게 했다. 개인 투자자들은 LG카드가 약 1,980억원의 유상증자로 회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유상증자에 임했을 것이다. 44:1감자라면 그 누구도 유상증자에 임하지 않았을 텐데 이를 모르고 유상증자에 참여한 순진한 개인 투자자들은 불과 1개월 사이에 휴지조각과 다름없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게된 데에는 주간사인 LG증권의 책임이 크다. 자기 고객들을 속여서 증자에 참여시킨 꼴이 된 것이다. LG카드의 부실정도를 주간사인 LG증권이 몰랐을 리 없을 텐데 이 조족지혈의 자금으로 천문학적인 LG카드 부실해소에 무슨 도움이 된다고 개인투자자들을 제물로 삼다니, LG그룹과 LG증권의 도덕적 해이에 몸서리가 쳐질 뿐이다. 이에서 보듯이 LG증권은 투자자를 위한 회사라기보다 오직 구?허가네의 증시 수탈을 위한 옛 조선총독부와 같은 전방기구라고 봐서 무리가 아닐 것이다.
카드 부실 사태를 선도한 LG카드
국민의 정부는 IMF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경기를 진작시키고 과표 현실화도 이루는 일거양득의 카드 활성화 대책을 내놓았다. 업계로서도 가맹점 수수료와 초 저금리 하에서의 높은 금리의 현금서비스라는 매력에 카드사업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까지 칭송하며 과당경쟁으로 이를 반겼다.
LG카드가 먼저 지불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무직자 젊은층과 여성을 대상으로 길거리에서 무차별 마구잡이로 회원을 모집해 회원 수만으로 업계 1위를 과시했다. 실속이야 어떻든 LG그룹에서 삼성그룹을 누르고 업계 1위로 오른 것은 신용카드뿐이었기에 그룹차원에서 실적경쟁을 독려했다. LG카드 임원들에겐 파격적인 보너스가 주어졌고 "배부른 2등보다는 피 흘리는 1등이 돼라"고 외치는 이헌출 당시 강연 비디오를 전 직원에게 돌려보게 할 정도였다.
이에 질세라 삼성카드 등 타 업체까지 '울며 겨자 먹기'식 경쟁에 뛰어들며 '회원 뻥튀기'가 벌어졌는데, 이에 금감원의 방조와 예금자산공사의 "빚 탕감"의 한마디가 가세해 카드 부실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빚을 탕감한다고 하니 신용불량자들이 폭증하기 시작한 것이다. 참으로 무책임한 관료의 한마디가 엄청난 화를 초래한 것이다. 현금대출 제한 완화도 카드 부실화에 가세했다.
업계 1, 2위인 LG카드와 삼성카드의 시장점유율 차이는 2%포인트에 불과하지만, 금년 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부실채권은 LG카드(11조6천억원)가 삼성카드(7조6천억원)보다 4조원이나 더 많다.
LG카드가 이렇게 부실화된 데에는 오너 대주주와 방만한 경영을 한 경영자에게 1차 책임이 크다. '대마'가 되면 '불사'할 것이라고 판단한 오너와 경영진들이 부실을 대폭 키웠다는 의혹이 있다. 높은 신용평가 AA-를 최대한 이용해 CP 회사채 등을 마구 발행해 부실을 키웠다는 것이다.
또 LG증권 노조는 LG카드가 의뢰해온 (주)미래신용정보(옛LG신용정보)에도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 회사의 실질적 대주주가 구가 일가라고 믿고있기 때문이다. LG증권 부사장 출신의 J씨가 지분 40%의 대주주인데 그는 오래 전부터 구자경 회장의 재산을 관리해온 구가네의 집사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LG증권 노조는,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LG카드가 채권을 적극적으로 회수하지 않고 이 회사로 넘겼을 공산이 크다고 주장한다. 자산을 빼돌렸다는 말이다. 자본금이 30억원인 미래신용정보는 02년에 무려 2,220억원의 이익을 냈다.
이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것은 LG캐피탈(LG카드의 옛 이름)시절(99년4월) 보유했던 LG홈쇼핑 주식 62만9천주(전체 지분의 15.7%)를 1주당 6,000원의 헐값에 허가네에게 매도해서 불과 8개월 후 막대한 시세차익을 올리게 해준 전과(후술)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검찰의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밝혀지겠지만 만일 그렇다면 보통 문제가 아닐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장회사의 주주 몫을 도둑질해 먹는 일에 이골이 난 구?허가들은 능히 그럴 수 있다는 게 증시의 중론이다. 이들이 이렇게 질탕질 치는데 증시가 온전할 리 있겠는가.
검찰은 대선 비자금 수사보다도 이 사건을 우선적으로 수사해서 구?허가네의 증시 수탈 비리를 낱낱이 밝혀 증시에 정의를 구현시켜야 할 것이다.
대선 비자금은 자기 그룹의 생존전략이라고 면죄부를 줄 수 있지만 증시에서 투자자의 수탈행위는 증시를 망치는 행위로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파렴치 범행이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증시가 침체하면 아무리 수출이 잘되어도 작금의 내수경기처럼 결코 경제가 살아날 수 없다.
LG를 지주사화 한 것도 LG카드 부실 털기에 대비한 예정된 수순이 아니었나 의심이 간다. 구?허가네는 LG카드가 무차별적으로 길거리 회원 모집할 당시부터 부실 가능성을 높게 봤을 것으로 봐야하기 때문이다. 타 계열 기업에 파급을 차단하기 위한 최선책이 바로 LG지주회사로 바꾼 이유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실화해놓고도 '나 몰라라'하며 주식을 개인 투자자들에게 몽땅 팔아치운 구?허가 대주주들은 놔둔 채 그 부실을 채권단에게 떠 맡겨 결국 국민부담으로 돌리려고 하는 정부와 채권단간의 지난 연말 벼랑끝 담판에서 김정태 국민은행장의 "LG그룹 오너의 책임론"을 강력 주장해서 LG대주주들로부터 겨우 3,750억원을 더 얻었을 뿐이다
구?허가네 대주주들이 지금까지 장내 매각한 LG카드 대금과 도둑질한 LG홈쇼핑 매각대금만이라도 우선 LG카드에 납입시켜 유동성 위기를 해소해야 한다는 게 증시의 중론이다.
대선 비자금 차떼기 150억원은 기업자금이 아니라 대주주가 보유하고 있던 자금이라고 했는데 이는 증시에서 투자자에게서 착취한 자금으로 이해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LG카드와 같이 '거품 키워 주가 부양한 뒤 매각'이라는 투자자 착취행위가 처음이 아니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와 같은 구?허가와 핵심 임원의 LG카드 매각은 침몰하는 여객선 승객에게 침몰 위험을 알리지 않은 채 선장과 선원들만 몰래 야반 탈출한 것과 다를 바 없는 부도덕한 행위로서 결코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멀쩡한 여객선에 구멍을 내 침몰시키듯 견실한 계열기업도 부도내거나 모 기업으로 흡수 합병하는 투자자 수탈행위도 서슴지 않고 자행하기 일쑤였다.
LG그룹의 모든 기업설립, 상장, 인수, 합병은 구?허가네의 재산증식을 위한 투자자 수탈작전이지 소액 주주(기관포함)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 증시수탈 방법은 대략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유형으로 분리할 수 있다.
(A) 상장 후 부도나 모 기업으로 흡수합병
반도스포츠(주) 부도
86년8월에 상장한 반도스포츠를 구?가 대주주들이 숨겨놓은 주식까지 팔아치우고 부도낸 후 92년8월에 퇴출시켰다. 렄키금성(LG)그룹이 이 기업을 살리려면 얼마든지 살릴 수 있었건만 결국 '설마?'라고 LG그룹을 믿었던 투자자에게 어처구니없는 부도로 화답해 투자자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힌 것이다. 개인 대주주 자신들은 이미 탈출을 완료한 상태였기 때문에 아주 쉽게 부도처리한 것이다. 단위 기업과 달리 LG그룹 측은 반도스포츠의 영업라인(공장과 직원)을 타 유사 계열기업(이를테면 LG상사)에 이전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LG그룹에서는 손해본 것이 아니다. 손해를 본 측은 오직 반도스포츠 주식투자자들 뿐인 것이다.
금성전기(주)
당시 인기 우량주였고 삼성그룹의 삼성전기와 같은 격의 LG그룹의 전자부품회사인 금성전기는 '금성'이라는 브랜드 가치로 투자자에게 인기가 있었는데 이 기업을 별 이유도 없이 고사시켜 91년6월에 금성사에 액면가 이하에 흡수 합병시켰다. 합병비율은 투자자(소액주주)가 큰 손해를 보는 비율로 정해졌다. 합병하기 몇 년 전부터 고의로 실적을 나쁘게 해 은밀히 고사시키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금성전자부품(주)
89년9월에 17,000원에 공모 상장한 금성전자부품 주식을 불과 3년도 안된 92년6월에 금성사에 흡수 합병했는데 가격은 10,000원 내외다. 물론 17,000원에 사주조합에 가입한 직원들도 피해를 입었다. 금성전기 대신으로 계속 상장될 것으로 믿었던 투자자에게 또 한번 실망을 안겨준 것이다. 공개할 때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장한지 불과 3년도 안 돼 모 기업(금성사)에 흡수 합병할 기업을 왜 상장시켜서 투자자와 직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쳤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 것이다. 이는 구?허가네의 주식장사를 통한 증시수탈 이외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금성통신(주)
또 LG그룹의 상장 통신업종인 금성통신도 액면가 이하에서 95년3월에 금성사에 흡수 합병했다. 물론 구?허가네 자기들의 지분은 금성전기나 금성전자부품에서와 같이 높은 값에 처분한 뒤였다. 금성통신의 침몰 역시 LG정보통신의 상장을 위한 예정된 수순이었다. 금성통신 투자자는 아무도 금성통신을 대체할 LG정보통신을 76년부터 설립한 사실을 몰랐다. 극비리에 진행해왔기 때문이다. 금성통신 주가가 하염없이 하락하는데만 의아했을 뿐이다. 이 금성통신 역시 합병비율을 낮추기 위해 고의로 실적을 나쁘게 진행시켰기 때문이다.
LG정보통신(주)
의당 금성통신에서 생산해야할 휴대폰 생산을 이미 76년10월에 LG정보통신 이라는 별도법인을 설립 육성해 95년 8월에 상장한 것은 바로 구?허가 및 핵심 임원들의 또 하나의 주식 장사를 통한 재산증식을 위한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봐야한다.
LG정보통신 역시 구?허가네는 99년에 10만원이 넘는 고가수준에서 몽땅 팔아치우고 LG전자에 흡수 합병 발표를 해서 또 한번 주주들을 격분시켰다. 이 두 주식의 가격 차이는 대략 5:1정도였는데 합병소식이 알려지며 LG정보통신 주가는 폭락하고 LG전자는 31,500원대에서 상승하기 시작해 45,800원까지 상승했다. 이 두 주식의 갭이 줄어들기 시작해 2천년 9월 최종 합병비율은 2.12:1이며 합병가격은 대략 20,000원 내외가 되었다. 미래 꿈의 산업인 휴대폰 단말기 생산업체로 인기가 한껏 부풀어 99년 한때 188,000원까지 오르기까지 했던 LG정보통신을 10만원 이상 고가에 매수한 투자자는 기업의 왕성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불과 1년 사이에 1/7안팎 내외밖에 안 되는 헐값에 LG전자에 넘겨야하만 하는 사실에 망연자실하고 만 것이다. LG정보통신 투자자가 피해를 입은 것은 이 뿐이 아니다. 보유 중이던 홈쇼핑 주식도 도둑질 맞았다.(후술)
반면 LG그룹 구?허가네는 상장한지 불과 5년만에 투자자 및 직원들을 대상으로 예정된 각본에 따라 '꿩도 먹고 알도 먹고'식의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아마 LG카드 이외 가장 큰 증시 수탈작전으로 기록될 것이다. 인면수심 철면피의 '투자자 흡혈행위'에 다름 아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합병 발표전인 2천년 2∼4월 사이에 이들은 LG전자를 2천억원 어치나 매수했는데 이는 LG정보통신과의 합병차익을 취하기 위함이었다고 봐야한다. 이는 내부 정보를 이용한 노골적인 내부자 거래가 분명한데 금감원은 이에 대해 조사하려들지도 않았다.
(B)주주 몫의 알짜 주식 및 현금 빼먹기
LG홈쇼핑(주)
99년 4월 LG정보통신은 보유 중이던 LG홈쇼핑 주식 101만6천주(전체지분의 25.4%)를 구본무 회장등 구가 11명에게 1주당 6천원에 매도했다. 비슷한 시기에 LG캐피탈(지금의 LG카드)은 자사가 보유한 LG홈쇼핑 주식 62만9천주(전체 지분의 15.7%)를 허창수 회장등 일가 인사들에게 같은 가격으로 넘겼다. 구?허가네의 동업자 관계가 존속되는 이유는 이와 같이 주주 몫을 공평하게 빼먹는데 의기투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주식 매각 때마다 매각 이유를 구?허가네의 지분 계열분리라는 변명은 LG생명과학과 상사의 구?허가의 지분을 보면 거짓임이 분명해진다. 지난 6월말현재 LG생명과학의 지분을 보면 허창수 3.7% 연암학원(구가네)3.1% 구본걸 2.1%이다. LG상사도 구본무와 허창수가 각각 1.3% 1.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와 같은 노골적인 주주 몫 도둑질 행위에 대해 LG정보통신 주주들이 분통을 터뜨린 것은 불문가지였다. 이에 대해 LG정보통신 측은 "비업무용 자산처분 및 유동성 확보차원에서 매각했다"며 "매각당시에는 코스닥에 등록될지도, 주가가 그처럼 급등하게 될지도 몰랐다"고 궁색한 변명을 했으나 이는 가증스런 거짓말로 주주를 더욱 분통 터지게 할 뿐이다. LG홈쇼핑은 99년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90% 증가하고 있었는데 이 같은 사실을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구?허가네가 알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홈쇼핑 주식을 넘겨준 시점인 99년 4월과 코스닥등록일인 다음해 1월 사이는 불과 8개월밖에 안 되는 기간이므로 매각 당시 이전부터 코스닥 등록을 추진했음이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불과 8개월 후에 막대한 평가차익을 얻을 수 있는 주주 몫을 도둑질한 것이다. 칼만 안 들었지 조직 폭력배와 진배없는 천인공노할 일이다.
2천년 1월 코스닥 등록시 LG홈쇼핑 공모가격이 55,000원이었으니 8백억원의 차익이 발생했고 홈쇼핑 붐을 타고 매출과 수익이 급증하면서 주가는 15만원을 넘었으니 수익률은 무려 25배며 차익은 2,400억원에 달한 것이다.
구?허가네 대주주들은 등록 보호 예수 기간이 지난 그 해 7월 중순 이후 주식을 수시로 처분해 다음해 상반기 이내에 28.9%지분을 모두 처분했다. 처분 가격은 대략 14만원에서 6만원 사이의 고가에 매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구?허가네의 고가에 주식을 매도하는 재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이다. 당시 코스닥증시가 이상과열 시기였으니 얼마나 많은 개인들의 투자자금이 이들의 먹이로 빨려들어 갔을까. LG홈쇼핑 주식만 아니다. LG텔레콤 주식에서도 추정키 어려운 막대한 증시 자금이 이들의 먹이가 됐을 것은 이제까지의 행태로 미뤄봐 불을 보듯 훤하다. 이렇게 코스닥증시가 이상 과열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들의 배만 불리는데 혈안이었던 것이다. 당시 주가 조작꾼들과 함께 사회 지도자급인 국내 대표 재벌이 이 지경이었으니 코스닥증시의 작금의 이상 침체는 당연한 결과라고 봐야한다.
LG화학(주)
2천년4월 LG화학은 대주주가 보유한 비상장 주식인 LG칼텍스정유 주식 118만주를 1주당 11만원에, LG유통 주식 164만주를 1주당 15만원에 매수했다. 이에 대해 기관투자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자 LG화학은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등을 감안하고 상속세법상 산정방법에 따라 결정된 가격"이라고 주장했으나, 적정가는 각각 9만원, 10만원 안팎으로 봐야한다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LG화학이 두 회사 주식을 사들이는데 쓴 자금은 3,766억원으로 당해연도 순이익 3,677억원과 비슷한 금액이다. 직원들이 땀흘려 벌어들인 돈으로 대주주들의 비상장 주식을 사줌으로써 주주들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금이 대주주 호주머니로 들어간 셈이 된 것이다.
이에 앞서 99년6월에도 대주주들로부터 같은 주식들을 3,319억원어치를 매수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구?허가네의 LG칼텍스정유와 LG유통 주식을 판 대금가운데 약 2천억원을 그 해 2∼4월에 LG전자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는데 이는 LG정보통신과 합병한다는 미 공개 정보를 이용해 시세차익을 위한 매집인 것이 분명하다. 구?허가들은 이와 같이 자기들 재산증식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막가파'식 파렴치범에 다름 아닌 것이다.
LG석유화학(주)
99년6월 구?허가 LG그룹 지배주주들은 LG화학으로부터 LG석유화학 주식 2,744만주(지분70%에 해당)를 1주당 5,500원에 사들였다.
LG석유화학은 LG화학이 78년 자본금 1백만원에 설립한 이래 20여년간 2천억원을 투자해 키운 회사다. 그 결과 지속적으로 당기순이익을 실현하면서 누적 결손을 털고 본격적으로 수익을 내는 시점에 와서 자본조달 비용에도 미치지 못하는 헐값에 전격적으로 구?허 총수 일가에게 팔아 넘긴 것이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가 공정거래위원회에 "헐값 매각"이라고 제소하자 LG화학 측은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한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주식을 매각했다"고 변명했지만, 실제로는 LG석유화학 주식을 매각한 바로 그 날 총수일가로부터 LG칼텍스정유와 LG정유 주식을 고가에 매입한 것으로 밝혀져 '눈 가리고 아웅'식의 가증스러운 거짓 변명임이 확인되고 말았다. 싸게 팔고 비싸게 샀으니 유동성 확충에 도움이 될 리가 없다. 결국 LG화학은 공정위로부터 부당내부거래 판정을 받아 79억원의 과징금을 물었는데, 이는 주주들이 2중의 피해를 입은 셈이 된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판정으로 봐야할 것이다. 도둑질해간 장물을 그대로 도둑의 소유로 놔둔 채 도둑맞은 LG화학에 벌금을 물린 꼴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LG석유화학 주식을 LG화학에 되 돌려줘야 한다는 판정을 해야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참여연대도 이러한 주장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3년 후에는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총수 일가는 02년4월에 LG화학에 LG석유화학 주식 632만주를 주당 15,000원에 되팔아 주당 9,500원 매매차익을 챙겼다. LG화학으로선 총수일가에게 주식을 판 지 불과 3년만에 3배 값을 주고 되사온 셈이다. 총수일가가 LG석유화학 주식 1,702만주를 처분(장내매각 포함)해 얻은 매매차익은 무려 1,650억원에 달한다.
(C) 부실 떠넘기기 합병
LG그룹은 부실 계열사를 주로 일반투자자들이 많이 보유한 견실한 계열사에 떠넘기는 식의 합병을 통해 구?허가 대주주들의 호주머니를 채워주기도 한다.
부실기업이 증자를 실시하면 일반 주주들은 대개 실권하기 때문에 대주주들이 물량을 받게 된다. 대주주들이 지분을 늘린 상태에서 우량 기업과의 합병설이 뜨면 부실기업의 주가는 오르고 우량 기업의 주가는 내리게 된다. 따라서 부실기업 대주주인 구?허가네는 주가상승으로 떼돈을 버는 것은 물론, 우량 기업과의 주가차이가 좁혀지면서 기업 합병비율에서도 혜택을 보게되니 일거양득 주가관리가 아닐 수 없다.
LG산전과 LG금속 합병
99년4월 합병한 LG산전과 LG금속의 경우가 그런 사례다. 견실한 LG산전에 비해 7천억원의 자본잠식 상태인 LG금속(옛 광업제련)과 합병설로 인해 양사의 주가 갭이 줄어들어 산전과 금속 합병비율이 1:1.2로 거의 대등해졌다.
LG산전은 부채가 2조원이 넘는 LG금속을 떠 안은 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급기야 주력사업이던 엘리베이터 사업마저 LG오티스에 넘겨야 했다. 그런데 이마저도 또 다른 주식장사를 위한 수순이 아닌가 의심이 간다.
LG증권과 LG종금 합병
99년 10월 LG증권과 LG종금을 합병한 것도 '부실 떠넘기기' 합병 유형의 하나다. 그러나 '제2의 LG산전'화를 우려한 LG증권 직원들이 강력하게 반발하며 주가 감시에 나선 결과 증권과 종금의 합병비율이 1:8.2로 벌어져 총수 오너 의도대로 되지 않은 유일한 케이스가 됐다.
그러나 합병 발표가 있기 전 35,400원까지 올랐던 LG증권 주가는 폭락을 거듭해 여타 증권주에게도 하락 도미노에 휘말리게 해 증시를 발칵 뒤집어 놓고 말았다. 이때부터 추락한 증권주들은, 현재 10개월 간이 증시가 장기 랠리를 펼치고 있는데도 아직도 늪에서 헤어날 줄 모르고 있다.
LG증권뿐 아니라 여타 증권주들도 개인 투자자들이 대부분 지분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들의 증시체감지수는 영하에 가까울 정도일 것이다.
LG 구?허가는 양(기업가)의 탈을 쓴 이리(조폭)
이상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구?허가네는 투자자(주주)에게 돌아가야할 꿩고기도 먹고 알까지도 먹어버린 셈이 됐다.
기업이 공개(상장?등록)한다는 것은 국민들의 자본을 참여시켜 기업성장 이득을 국민과 함께 공유하겠다는 의도에서다. 그런데 이상의 설명과 같이 LG 구?허가네는 기업 경영을 잘해서 주주에게 보답하겠다는 기업가적(Enterprenurship)이기는커녕 오히려 투자한 국민들을 대상으로 탈법적인 주식장사에만 열을 올려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어먹기 일쑤였다.
1조원이 넘는 LG카드 주식을 매각하고서도 구?허가들은 질탕질한 경영에 대한 책임은 질 생각은 전혀 없이 LG증권과 LG지분(5.1%)을 덜렁 내놓은 후 '나 몰라라'하고 있다.
LG그룹이 LG증권을 내 팽개친 이유도 이제 앞으로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집단 소송제'로 인해 더 이상의 투자자 수탈행위가 어렵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LG 구?허가와 핵심 임원들의 이와 같은 방법으로 증시 투자자들에게서 착취해간 자금이 얼마나 될까? 아마 10조원은 족히 넘을 것 같다. 그 자금의 절반만이라도 LG카드 정상화에 힘을 보태면 그 동안의 죄과가 어느 정도 사해 질 것이련만 지금까지의 행태로 봐 전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들의 이와 같은 '약육강식'의 투자자 수탈로 인해 개인투자자가 증시에 설 땅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우리증시는 41%가 넘는 지분이 외국인 몫이 되어서 '국민의 증시'가 아니라 사실상 외국인의 독무대가 된 것이다. 지난 한해 받을 외국인의 배당금만 3조원이고 평가차익만 34조원이라니 우리 '경제의 안방'을 외국인이 차지하고 우리는 셋방신세로 전락한 꼴이 되고 만 것이다.
재경부와 금감원이 이제까지 이들의 투자자 수탈작전에 의한 투자자의 비명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정부가 증시의 건전한 발전을 진심으로 원한다면, 약자(투자자)편에 서서 이러한 기업 오너들의 수탈행위를 근절시키는 기강을 확립해서, 증시의 '정의 구현'에 온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코스닥증시 역시 기업오너들의 사내 자금을 마구 빼돌리는 파렴치 행위도 제도적으로 근절시키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증시 신뢰도 회복 없이는 결코 '국민의 증시'로 거듭날 수 없기 때문이다.(끝)
(신동아 04년 1월호 "LG그룹오너의 놀라운 재테크"에서 자료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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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L모 그룹과 관련된 주식들은 손도 대지 말라던 증시격언이 있을 정도로
이들은 무서운 세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도 작전한번 하다가 망신당한 통쾌한 사건이 있었죠.
그 이야기는 다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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